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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복시정공파약사, 전자족보 활용방안
작성자 오윤영 [2018-01-31 10: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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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시정공퍄 약사, 전자족보 활용방안.pptx

2018년 1월 28일 부터 29일 간 대전에 뿌리공원 워크샾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오늘 대종회 여러 임원님들 앞에서 제가 해주오씨 사복시정공파 문중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전자족보에 추진 사례의 제목으로

발표할 기회를 주신 회장님께 감사 올립니다.

말씀드릴 내용은

사복시정공파의 약사

사복시정공파의 4개 문중 소개

대종회와 우리, 기존족보와 전자족보의 오류,

전자 족보의 구축과정과 전자족보의 활용방안에 대한

제 개인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저희 사복시정공파 계보를 보아 주십시오.

조선 영종조(1771년판) 辛卯譜 卷六 世譜癸編에 사복시정공파 휘 충수를 파조로 하여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휘 충수께서는 해주오씨 8세이신 휘 반의 5자 중 둘째 분으로 휘 성식의 바로 밑에 아우 되십니다. 고려조엔 중직대부를 하시었고 이조에선 말과 가마를 관리하는 지금의 교통담당 관청의 장인 사복시정 하시었고

그 밑으로 10세 휘 림께서는 용양위 부사과(6) 11세 휘 중부께서는 동 부사직(5)을 하시었는데, 무후로 6촌간이신 휘 명례의 8형제중 5자이신 휘 순공을 입양하시었고 후사를 잇게 하시었습니다.

휘 순공께서는 휘 예손과 휘 의손 형제분을 두시었는데, 두 아드님의 작명을 예손과 의손으로 하신 것은 아마도 휘 명례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그리 하셨나 하고 추측도 해봅니다.

휘 예손께서는 삼형제를 두시었으니 장자는 계산공 휘 경이오 차자는 장사랑공 휘 하이고 삼자는 우리 문중의 자랑인 청백리 부훤당공 휘 상입니다.

 

다음으로 이천의 계산공 문중의 유래를 말씀드리면 聽天堂 沈守慶見閑雜錄에 우리문중은 남문 밖 남정동(지금 봉래동1)에 있었다하는데 12세 휘 순의 장자 휘 예손과 차자이신 휘 의손의 연이은 등용으로 주위에서 관로가 촉망 받던 문중이었으나 장자께서 早世하시고 차자께서 상소문제로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시는 가세에 불운이 와서 휘 순의 배위이신 장단김씨께서 가솔을 이끌고 친정집에서 얼마간 상속 받은 토지가 있는 지금의 이천시 장동리로 이거를 하시게 되었고, 이곳에서 당시 당쟁으로 은둔생활을 하시는 모제 김안국 선생의 문하생으로 휘 경과 휘 상께서 동문수학을 하시여 두 분 모두 진사시에 등과하시어 문중의 재기의 발판이 되었는데,

휘 경께서는 당시 당쟁으로 조정이 험난하여 관직에 나가기를 마다하시고 장동리 원적산 밑에서 계산취로라 자호 하시고 당시 정계에서 밀리어 은둔생활 하시던 모제 선생을 비롯하여 六賢者 즉 성두문 선생, 엄용순 선생, 강규정 선생 임내신 선생등과 함께 이천 도립리에 정자를 짓고 느티나무를 6그루 심어 육괴정을 지으시고 이곳에서 세태를 탄하시며 시문과 음률로 지내시었습니다. 지금은 이천시에 六賢을 기리어 향토 문화제로 되어 매년 4월 초 산수유 꽃 축제 때 六賢祭를 올리고 있습니다.

계산공께서는 부훤당공에게 부모 겸 동문수학한 동문, 또 시우로서 관직에 계실 때 청백리로 녹선되는데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신 흔적이 부훤당 유고집에서 여러군데 보입니다.

차자 휘 하께서는 무후로 삼자이신 휘 상의 차남으로 후사를 잇고 지금의 성환인 직산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삼자이신 부헌당 휘 상께서는 중종 인조 명조 선조 4代朝에 걸처 6조 판서, 한성부윤, 9차례의 대헌, 나주목사, 강원도 관찰사 등 요직에 등용되었고 나주목사시절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녹선 되시었고, 그 후손인 20세 경행제 휘 일께서 홍성에 입향조가 되시고, 13세 휘 의손께서는 식년시에 등과하여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상소문제로 종성으로 유배가신 뒤 그 후손과 연락이 서로 없다가 2013년 서울 청계산밑 원지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하여 방문하게 되었고 이제는 문중간 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 하면 계산공문중은 이천, 장사랑공 문중는 직산 지금의 성환, 부훤당 문중은 홍성이고 좌랑공 문중은 원지동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음은 대종회와 저희 문중과 관계와 대동보, 전자족보 오류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대종회 입회한 경유는 2003년도 에 제가 종회장을 맡고 나서 선임종회장님이 어떤 대종회에도 소속이 안 되 있어 이건 아니다 하고 생각하여 대종회 입회를 두고 생각하다가 우리의 생 할아버님 즉 휘 명례를 모시고 있는 대종회에 가입함이 옳다고 보아 이곳에 입회하였으나, 이미 장사랑공 문중과, 좌랑공 문중은 대동종친회에 입회하여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차차 우리 대종회로 가입토록 이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회 후 임신 대동보를 접하고 그림에서 보시듯 충수를 비롯하여 3대가 누락된 오류를 발견하였고 이를 바로잡으려 하나 기 발간 배포된 대동보의 오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즈음 전자족보를 추진 한다하여 이때 바로 잡으려 했으나 전자 복보에서도 보시다시피 또 오류가 있어 이를 수정하기를 여러분들이 다 아시다시피 3년여를 기회 있을 때 마다 변변치 못한 언변으로 역설하여 100% 만족하진 않아도 수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간 애써주신 회장님 사무총장님 국장님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오류는 옛 대동보인 앞서 말씀드린 신묘보 말미에 단불래 라는 문구로 한때 휘 순의 생가인 찬성공문중과 양가인 저희 문중 간 이견이 있었다 하나 이는 국조 방명록에 예손과 의손의 기록에 4즉 증조 휘 림, 조부 휘 중부, 그리고 부 순으로 기록 되었고 상의 기록은 증조 휘 중부 조부 휘 순 부 휘 명례로 기록된 것과 부훤당의 7대손 붕운(1691~1763)공의 방주에 윗 조상의 묘소를 찾아본 기록에 보면 소귀골 지금의 우이동에 묘가 세 개가 있는데 아래의 두 개 묘비에 휘 중부와 휘 순으로 되어있어 휘 순의 묘가 생가인 휘 명례묘역이 아니고 양가인 휘 중부의 묘아래 있다 하였으나 지금은 개발이 다 되어 흔적도 못 찾고 위 장동리에 설단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또 영. 정조시 이조판서를 하신 순암 오재순(1721~1792)의 찬한 부훤당 상공의 행장기록 등을 보아 휘 순은 확실히 사복시정파의 계보임을 알 수 있으나, 잘못 된 시각에서 편집해서 생긴 오류가 아닌가 생각하여. 위 사항을 근거로 감히 수정을 주장했던 바입니다.

 

다음은 파보와 전자 족보를 만들며 느낀 점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과거의 씨족 문화가 없어지고 더더욱 가족법까지도 개정되어 삼대 이상은 알지 못 하거니와 관심도 없이 지나가도 사회생활에나 공직을 맡을 때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세상이고, 윤리 도덕이 말살되고 물질 만능시대, 심지어는 금전문제로 부모님마저도 살해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이런 시대에 족보의 의미나 필요성이 없어 수단에 불응으로 저의 같은 적은 문중의 파보를 편찬 발행하는 데도 무려 3년여나 걸렸습니다.

이렇게 구닥다리 족보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나 미국의 록펠러가, 케네디가나 영국의 왕실 및 그 외 귀족들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우리의 족보와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먼 훗날 어느 문중 어느 종파를 찾고 이로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세대가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열심히 파보를 편찬 발행 하였습니다.

후세를 위해 서식도 가로로 편집하고, 한문엔 () 표시로 한글을 병행 표시 하였습니다.

기 발간된 파보나 대동보나 일단 오류가 나면 수정할 수 없고 그대로 전파되니 앞으로 대동보 편찬 발행 할 때에는 더욱 신경을 써야 되겠고,

이렇게 힘든 과정을 통하여 구축한 족보의 활용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고

또 실제로 우리 대종회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종원이 많다는 것을 감안 홍보강화를 해야겠고

전자 족보에 신규 둥록이나 수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점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음은 대종회와 전자족보의 활성화 방안의 제 개인 의견 몇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종회 인터넷 사이트에 역사와 연계된 만화나 게임 등을 개발 하여 누구나 즐겨 자주방문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이라든가

중국의 오태백제 같은 세계적인 큰 행사에 참가비용을 대종회와 종회에서 일부 부담하여 자부담을 경감하여 각 종중에서 몇 명씩 추천하여 보냄으로서 자랑스러운 오씨의 후예인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하며,

그간 동주 국장 동혁 회장 등이 많이 노력하여 이룬 타 문중과 비교하여도 그리 손색이 없는 현 세덕단에서 체험 학습 같은 것을 개발하여 실비로 최소한 문중자녀들 만이라도 12일이나 아니면 하루 만이라도 체험학습을 함으로 자연스레 해주오씨의 일원임을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활용 하므로 대종회의 홍보와 존재를 일깨워주는 방법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자 족보에 등재나 수정을 요청 할 시에는 민원사이트에서 호적 등초본 발급할 때와 같이 전자결제 방식을 도입하여 면당 혹은 건당 수수료(?)를 결제하면 대종회에서 확인 검토하여 등재, 수정 할 수 있고, 누구나 결제 하고 바로 열람이나 복사 할 수 있는 시스템 즉 管理者權限을 확보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17년도에 우리 종중의 각처에 산재되어 있는 묘소를 한군데로 모아 세덕단을 조성한 것입니다.

 

이상으로 저의 부족한 말씀을 경청해주시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경석 2018-02-05 08:47:15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중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아직 우리 인터넷족보에 등재가 안된
종친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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