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종친/계파 게시판
종친/계파 게시판
제목 甲戌譜跋
작성자 오결주 [2022-10-27 19:49:30]
첨부파일
첨부된파일갯수 : 1
20221027_194232.jpg

上年秋翩有海西命將行拜今左相楸灘先生於漢江別墅告辭先生賜之坐不暇出一言即喟

曰聞子有是 命於我心有所感矣抑有所喜矣我首陽之吳麗初大姓也自始祖軍器監諱仁

裕仕于朝厥後僕射諱札侍中諱延寵趾美中葉宗閥官績著於青史而氏族之譜亦行於一時

可謂盛矣入于本朝吳氏不大顯有舍人先敬蒐輯支派繼舊譜而成籍藏于家至今傳諸同宗

余使家弟都正允諧繕寫一本畢載始祖內外裔孫以謀刊鍥子之王父節度公實與於此事事

未就而節度公下世家弟亦先朝露此所感也今子仕宦而駐節之地是乃鄉貫不特書錦之有

榮耀焉子必有意於吾與節度公所甞謀者捐官俸之餘以濟其役氏族之譜復行於今與後而

後生晚出皆得以寓目相勉以敦睦孝悌之風則吾責塞而吾子述事之道亦且盡矣此所喜也

黼作而對曰不肖無狀荷祖先之靈際風雲之會忝竊方岳何敢不力於門戶大事而况承先生

面命申之以王父遺志者哉遂辭既到首陽月餘鳩工創設以書走京師謁于先生曰譜將入梓

而吳氏之居本土者甚夥齊會館門請見趨使之前各以世系書進徐而察之本土之吳乃兩派

而一則出於進士吳網一則出於生員吳生韻今人相去各五六代而不知其源果同出於吾始

祖軍器監否也然而皆為海西望族而首陽之吳則一也願別刊兩派附諸族譜之末於義不可

拒也惟先生裁之先生復曰唯唯刊譜既完翩復以書請先生既有譜而不有先生之文牟于卷

首則後嗣何觀焉無惜觚墨餘事以命之翻待此而訖功先生復曰子其詮次吾與子往復之語

以識顛末足矣欄不敢辭而遂書之是為

崇禎七年甲戌七月三日

 

 [甲 戌 譜 跋 註 解]

昨年 가을에 내가 黃海道 觀察使에 任命되어 

장차 赴任하려할 때 現 左議政 楸灘先生을 

漢江 別莊에서

뵈옵고 인사의 말씀을 드리니 先生께서 나에게

 앉을 자리를 주시며 다른 말씀을 내리기도 전에 

매우 개탄 하시며 이번 그대의 任命된 말을 듣고 

내마음에 悲感한 바도 있고 또 기뻐한 바도 있었네.

 우리 海州吳氏는

高麗初부터 大姓으로써 처음

 始祖 軍器監諱仁裕께서는 高麗朝廷에 벼슬하셨고 

그후 僕射(야) 諱札과 侍

中 諱延寵은 中葉에 연이어 일어나서 으뜸가는

 門閥과 벼슬을 함으로써 功績이 史記에 오르고 

氏族의 譜도 또한 一時에 行하여 盛하다고 

할만하더니、李朝에 이르러서는 吳氏가 크게 

드러나지 못하고 舍人公諱先敬

께서 여러 支派로 된 것을 蒐集하여 舊譜와같이 

새로 文獻을 만들어 집에 保存하여 現今까지 

여러 宗中에

傳하여 오는 터일세. 내가 내 아우 都正允諧로 

하여금 책 한권을 騰書하여 始祖以下 안팎 

후손을 다 記錄하여 印刷를 計劃할 즈음에 

君의 祖父 節度公諱定邦께서도 이일로 많이

애를 쓰셨으나 成就는 되지 못하고 절도공도 

별세하시고 내 아우도 아침 이슬처럼 일찍 

사라진것이 새로이 悲感한것이요

君의 이번 駐節

(근무)하는 地方은 우리 고향인만큼 特히 옛적 

宋나라의 정승 富弼의 相州 晝錦堂의 

榮光이 될 뿐아니라.

君의 祖父와 나와의 일찍 計劃하던 일에 有意하여 

君의 俸給에서 얼마쯤 떼어 그 譜事를 완성하여 

새 族譜가 다시 오늘부터 이후에까지 傳하여지고 

또 이 뒤에 늦게 出生하는 사람들까지라도 

다 求하여 볼 수 있게

하여 서로 親睦과 孝와 友愛하는 良風을 기르도록하면 

나도 나의 責任을 免하게되고 또 君의 祖父가 有意

하시던 일도 잘 이루어지니 君이 祖父께 할 

道理를 다하였다고 하겠으니, 

이것이 기뻐하는 바이네 하는 말씀을 듣고 나는 벌떡

일어서며  변변치 못한 제가 조상의 영혼이 도우시고

 또한 좋은 機會를 만나 황송하게 도

지방장관이 된것만 하더라도

 의당 門中 큰일에 힘쓰지 않을 수가 없아온데 

하물며 先生께서 이처럼 말씀 하시고 겸하여

 祖父님의 끼치신 뜻으로 신탁하시는데

 더 어찌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하고 대답한 뒤에 

드디어 사례하고 나와서 海州에 到任한지 한달만에 

인쇄직공을 모집하여 譜牒의 일을 시작하고 

일변 便紙를 急便으로 서울에 보내어 先生께 

여쭈옵기를 族譜는 장차 刊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本土에 吳氏가 많이

거주하옵는데 그들이 舘門밖에 모여서 저 보기를 

청하기에 내 앞으로 오라 하였더니, 

제각기 世系를 내어

보이기에 제가 서서히 상고하온즉 

本土의 吳氏가 원래 兩派로 나누어져서 一派는 

進士諱綱이오 一派는 諱

生韻인데 나온지 벌써 五·六代나 되었습니다。

그 根本은 우리始祖 軍器監后孫인지 아닌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모두 다 海州의 巨族이오며 

海州吳氏는 同一함으로 同宗의 義에 있어 拒絶하기 

어렵사오니 그들은 別譜로 우리 族譜끝에 붙여줌이 

옳을까하와 오직 先生께서 決定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고 간청하였더니、先生께서 그리하라시는 

답장을 받잡고 譜事를 장차 마치게 되자 

나는 다시 편지로 先生께 請하기를 

이미 族譜는 이루어졌으니、先生글로 쓴 序가 없으면 

後人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筆墨의 나머지 일을 아끼

지 마시고 命하시옵소서. 

전 그것을 기다려서 필역하겠습니다. 

한데 對하여 先生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君과

나와의 往復한 事由를 그대로 잘 만들어 始終을 

기록하면 그만이 아니겠는가 하는 회담을 받잡고 

나는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여기 써서 跋로 하는 바이다.

 

崇禎七年(西紀一六三四年 仁祖一一年)甲戌七月三日

後孫 通政大夫 黃海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巡察使 䎘은 삼가 跋하노라.

출처 해주오씨 전서공파보소

                1977년7월 간행본

        

이전글 ...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