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3 하반기 금강회 행사 | |||
작성자 | 오경석 [2023-11-29 17:32: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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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삼세오충열사 및 신안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방문기 익산 삼세오충열사 익산은 백제의 마지막 고도로 지붕 없는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많은 유적 중에 우리 해주오씨와 관련된 삼세오충열사가 있다.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 15세 완월당공파 파시조)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손자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가 배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우리 금강회원 15명을 태운 버스는 아침 8시 30분 구의동 사무실을 출발하였다. 교대역에서 기다리던 회장님과 종친 다섯 분을 더 태우고 경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1박2일의 여행 일정이라 그런지 모두들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무총장의 일정 소개에 이어서 참가하신 종친 각자 소개의 시간이 있었다. 금강회 행사는 우리 해주오씨와 관련된 유적지를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항상 교육용 책자를 준비한다. 이번에도 영택 대종회장께서 책자를 만드시고 우리 종친들에게 삼세오총열사에 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심어 주신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며 9세조 양정(陽亭) 희(僖)공의 6대손이시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당하관으로서는 최고의 품계)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적의 숫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은 임진왜란 중 강화도 교섭의 결렬로 왜군이 정유년(1597)에 14만 군사를 동원, 다시 침략한 전쟁이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1618년에 명나라의 요청에 따라 우영천총(右營千摠)이 되어, 원수 강홍립(姜弘立)과 함께 북정(北征)하였다. 1619년에 부차(富車)에서 적을 치던 중 좌우 산속에 매복하고 있던 적 수천 명이 불시에 협공해왔는데, 좌영장 김응하(金應河)와 힘을 합쳐서 적은 병력으로 계속 전투에 임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8, 9차례나 싸웠으나 도저히 승산이 없자 백마를 타고 적진에 돌진하여 수많은 적을 죽인 뒤에 스스로 칼을 물고 김응하와 함께 자결하였다. 오직의 아들 방언(1588∼1637)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청군과 싸웠다. 1637년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굴욕을 당하며 청군에게 항복하자 분을 참지 못하고 한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뒤이어 부인 정씨 또한 목숨을 끊자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포상하였다 한다. 영택 회장의 설명으로 삼세오충열사의 역사적 배경과 우리 선조들의 나라 사랑 지극함에 전율이 느껴질 때 쯤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용안면 중신리로 향했다. 삼세오충렬사에 도착하니 오동훈 사무국장님을 비롯하여 오씨 전라북도 대동종친회장 오영렬씨, 익산시 금마면 번영회장 오복철씨 등 여러 명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도로변에 위치한 삼세오충렬사는 넓은 주차장과 관리소 건물이 있었고 외삼문과 기념관, 내삼문, 삼세오충렬사, 묘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삼문인 복절문을 지나면 왼쪽에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는데 영국관 안에는 오응정이 받았던 교지와 당시의 의복과 기타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역사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중요한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유품들의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여산 권갑석이 쓴 현판이 걸려있는 삼세오충렬사가 나온다. 해주오씨 충신 3대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으로 그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그리고 우측에 직 과 방언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섯 분의 위패에 참배하고 나와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충렬사를 나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오공 신도비와 무인석이 양옆으로 지키고 있는 오응정 공 묘소와 그 후손들의 묘를 볼 수 있었다.
그 위쪽으로 정려각이 나오는데 정려각에는 ‘삼자일손삼세오충 (三子一孫三世五忠)'이라는 현판과 그 외에도 여러 현판이 걸려 있는데 충신들의 행적에 대한 글들이 적혀 있었다.
다시 관리소 앞으로 나오니 양정공파 익산종중에서 점심을 준비 하였다고 하여 이화동산이라는 이 지역에서는 꽤 유명한 한식 집으로 갔다. 깔끔한 맛의 한식과 후식이 무척 인상적 이었다. 점심 식사 후 이화동산 에서 조성한 주변의 정원을 산책 하였는데 3만여 평의 정원에는 무수히 많은 항아리와 화원, 전망대 등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우리를 반겨준 양정공파 익산종중 관계자 분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전남 신안군 증도로 행했다. 어둑어둑할 무렵 송도 수산물 유통센터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하였는데 싱싱한 방어회가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한다. 성택 관장이 오늘아침 미리 들러서 횟감을 고르고 숙성을 부탁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와 곁들이는 반주에 술을 좋아하는 종친들의 화색이 서쪽 하늘에 지는 노을과 조화를 이룰 즈음 식사를 마치고 문준경 기념관으로 향했다.
신안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한국교회의 위대한 신앙인 문준경 전도사는 조선 말기 1891년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기 있고 실력이 남보다 뛰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녀가 17세가 된 1908년 3월 결혼을 하게 되지만,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안타까운 그녀를 본 시아버지가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1928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자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포로 건너가서 삯바느질을 하던 중 전도사를 만나 성경을 접하게 된다. 당시 목포 북교동교회를 다니면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1933년 임자도 진리교회를 시작으로 증도, 암태도, 자은도 등 신안군 내 100여 곳에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섬 지역에 복음을 전하며 섬사람들의 빛이 되어 섬 선교의 어머니로 불렸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퇴각하던 공산군과 좌익들로 부터 성도들을 지키기 위해 힘쓰다가 안타깝게도 1950년 10월 5일 우전리 백사장에서 순교를 한 분이라고 한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지나간 발자국도 중요하고 오늘 우리에게 오성택 목사님의 헌신적인 행동이 크게 다가온다. 어제 저녁에는 기념관의 숙소에서 잘 쉴 수 있도록 챙겨 주시더니 오늘의 일정을 꼼꼼히 정리 하신듯하다. 아침 식사로 이 지역의 유명 음식인 짱뚱어 탕을 먹었다. 그 모습이 마치 추어탕 비슷하면서 구수한 맛을 내는 건강식품 이란다. 아침 식사 후 다시 기념관으로 돌아와서 문준경 전도사의 행적, 이 지역에 끼친 큰 영향, 기념관 건립의 배경 등의 설명을 자세하게 들었다. 우리 대종회의 친목단체 금강회 에서는 지역종중 방문 시 초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은 기념품을 준비한다. 이번에도 양정공파 익산 종중과 문준경 기념관 방문을 기념하고 애써주신 오성택 관장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품을 증정 하였다. 성택 관장은 답례품으로 신안에서 생산된 소금을 우리 모두에게 주셔서 종친간의 정을 느끼게 하였다.
기념품으로 수건 80매를 찬조 해 주신 참판공파 석규 종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성택 관장님의 집무실에는 신안군 일대의 커다란 지도가 걸려있었다.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있는 신안군은 상당히 많은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지역 이라고 설명을 해 주신다. 이름이 섬이지 지금은 여러 곳이 교량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접근이 용이 하다고 한다. 대광 해수욕장, 우전 해수욕장, 지은도, 천사섬, 팔금도 등의 설명을 들으니 관광 해설 사 이상 가는 식견과 언변을 가지고 계셨다. 아마도 이 지역을 너무 사랑하고 많은 이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이리 달변이 되신 것 같다. 성택 관장님이 소개하는 신안의 명소를 다 들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제약된 관계로 태평 염전과 소금 박물관, 염생 식물원 등 일부 지역만 관광하기로 하였다. 국내 최대의 단일 염전인 태평 염전은 국내 소금 생산량의 6%를 생산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염전이라 한다. 태평 염전 입구에는 소금 박물관이 있었는데 소금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자료를 볼 수 있었고 소금의 역사, 소금의 미네랄 구성, 천일염 생산 방식, 소금의 활용법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소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금 박물관과 염생 식물원을 둘러보고 난 후 깔끔하게 차려진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 식사 후 태평 염전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백사장 길이가 4Km에 이른다는 우전 해수욕장에 들러 고운 모래의 촉감과 바닷바람을 느껴본다.
끝까지 동행 하며 설명을 해 주신 성택 관장님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여행을 마치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삼세오충렬사 관계자 분들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주신 문준경 기념관 관장 오성택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여행에 동침하신 금강회 회원님들께도 감사드리며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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