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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303주기 태백탄신제 참제
작성자 오경석 [2019-06-12 11: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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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3
주기 태백 탄신제 참제

 

46일 오후 1시 오영택 회장님을 비롯한 우리종친 14명과 다른 한국오씨 6명 등 종친 20명이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모였습니다. 이름 하여 한국오씨 종친총회입니다.

3,303주기 태백 탄신제에 참석하기위해 대한항공 KE847 편으로 중국으로 가기 위함 입니다.

출발 시간까지 세시간여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 종친들은 이런 여유시간을 잘 이용하십니다.

틈만 나면 모이십니다. 곡차와 함께...

 


   

 중국 제남공항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두시간여 비행 끝에 제남 공항에 도착 하였고

여권에 붙여진 번호대로 일렬로 서서 단체비자 입국심사를 받았습니다.

이번 우리의 일정은 지난해와 달리 관광을 먼저하고 마지막에 태백탄신제에 참여 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제남 공항에서 입국을 하니 중국 가이드가 우리를 반깁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2시간여를 달리니 태안 이라는 도시에 도착 하였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묵고 내일 태산에 오릅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호텔 식당에 모인 종친들은 지친 기색도 없습니다.

  

  
 

 식사에 앞서 영택 회장님과 진우 총재가 이번 여행의 목적과 일정, 그리고 향후 한국오씨

종친총회의 나아갈 방향등 설명을 곁들인 간단한 인사를 하였습니다.

우리 종친들이 여행을 할 때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소촌공파 범섭 회장님은 벌써 그것을 주문 해 놓으셨습니다

 곡차.. 그것도 센 놈으로..   56도의 곡차는 목 넘김 할 때 특별한 느낌을 줍니다.

 

  
 

 47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섭니다. 오늘은 태산을 등정 하는 날입니다.

태산은 중국 산둥성 중부, 태안시의 북쪽에 있습니다. 표고 1545m. 고대의 성왕 순()

 5악을 순찰 할 때 제일 먼저 태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있어, 한 이래 역대

천자가 하늘을 제사하는 봉선의 의()를 행했다고 합니다. 진시황제가 28(B.C. 219)

봉선을 시도할 때, 가여가 통과하는 참도를 만들었다 하며 현재는 산정까지 7000여단의

석단이 이어져 있습니다.

태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셔틀 버스를 타야 합니다. 셔틀 버스로 20여분 산을 오른 후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태산의 중간 지점에 오릅니다.

 

  
   

 중국은 14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 중국은 청명절 연휴라 합니다. 태산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중국인들이 거리에 넘쳐 납니다.

 7000여 단의 석단을 오르는데 우리 종친을 포함한 끝없는 인파로 장관을 이룹니다.

 

  
 

 끝없는 인파에 뒤섞여 계단을 오르고 올라 숨이 턱밑에 찰 때쯤 남천문이 나타납니다.

남천문은 태산에 있는 명소로 바판[八盘] 끝부분에 위치하며 이곳의 해발은 1,460m

과거에는 톈먼관[天门关]”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나라 중통(中统) 5(1264),

도사(道士) 장즈춘[张志纯]의해 창건되었답니다.

입구는 누각식 건축양식으로 되어있으며 붉은 색의 담장에 황색 유리 기와가 얹혀 있어 웅장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남천문에서 벽하사를 오르려면 천가라고 하는 거리를 지나야 합니다.

천가에는 길가에 상점들이 줄지어 있어서 기념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태산을 오른 사람들을 상대로 하던 객잔 이었는데 시대가 지나지금은 기념품이나

먹거리를 파는 상점가로 변했다 합니다.

  


 

 

 


 

 


 벽하사로 가는길 중간에 망오성적(望吳聖迹) 석방(石坊)이 있었는데 이곳이 공자묘(孔子廟)

즉 태산에 있는 공자사당입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를 우상화하고 있으며 공자의 사당이 곡부(曲府)에 있는 공묘(孔廟)와 이곳

태산(泰山)에 있는 공자묘(孔子廟), 그리고 북경(北京)에 있는 공자묘(孔子廟)가 대표적이며,

남경(南京)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공자를 숭상하는 사당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곳 태산에 있는 망오성적(望吳聖迹)은 공자(孔子)와 안자(顔子)가 태산에 올라 이곳에서

오나라의 도성 소주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 곳으로 성스러운 자취가 남아 있다는 뜻이며

공자와 안자가 대담을 한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서 훗날 공자(孔子廟) 사당을 지었는데 들어가는

입구 석방(石坊)에다 망오성적”(望吳聖迹)이라 적었다 합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 오가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 한 성씨이며 이곳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

생각 되었습니다.

  




 옥황정은 타이산[泰山] 주봉(主峰)의 꼭대기를 지칭하며, 이 지역에 위황먀오[玉皇庙]가 있는

데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합니다. 위황먀오[玉皇庙]가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나라

현종때 중건되었답니다. 주요 건축물로는 위황뎬[玉皇殿], 잉쉬팅[迎旭亭], 왕허팅[望河亭],

둥페이뎬[东配殿], 시페이뎬[西配殿] 등이 있으며, 불당 내부에는 옥황대제(玉皇大帝)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48

이른 아침을 먹고 성덕 국제 호텔을 나섰습니다.

중국 산동성 곡부 에 있는 공묘를 방문하기에 앞서 맹묘를 방문 하였습니다.

맹묘(孟庙)는 쩌우청(邹城, 추성)의 청구(城区, 성구) 남부에 위치하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No.3-83)로 지정되어 있고 사당 내에는 고목이 울창하고 비석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으며

주위가 붉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맹묘(孟庙)의 면적은 남북으로 458.5m, 동서로 95m로 총면적은 65.3()로 공묘(孔庙)

다음가는 규모로 산둥성(山东省)에서 현존 역사가 오래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고건축군의

하나이며 송원대에서 명청 시기에 이르는 고건축의 대표작품이라 합니다. 맹묘 내에는 진(),

(), (), (), (), (), (), ()의 역대 비석 280개가 있으며 이 중 주요한

내용으로 역대 황제의 성지(圣旨), 맹씨가족보계(孟氏家族谱系), 역대 확장 기록, 문인묵객의

시와 글씨, 맹묘송(孟庙颂) 등으로 매우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맹묘에서 20Km정도 이동을 하면 공묘가 나옵니다.

공묘(孔廟)는 기원전 479년 공자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세워졌답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크게 파손되기는 했지만, 2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면서 그 영지는 나날이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1499년 큰 화재로 사원 대부분이 불탔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들은 모두 그때 살아남은

것들이라 합니다.

대문을 하나하나 지나서 들어가야 하는 9개의 안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098년에 지어진 규문각(奎文閣)1191년에 재건되었으며, 위층은 장서고로 사용되고

있다 합니다.

더 안쪽으로는 대성전(大成殿)이 있는데, 안뜰의 네 귀퉁이에 탑이 서 있습니다. 대성전

앞으로는 행단(杏檀)이 이어집니다.

 모든 정자와 전각들은 붉은 벽과 황색 지붕, 그리고 흰 대리석을 조각한 중국 전통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목적인 유교 사당에서는 조각상(彫像)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공자의 후손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취푸(곡부)에서는 공자상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유교 사상이 동아시아로 퍼져 나가면서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까지 공자의 사당이

생겨나게 되었다 합니다. 이러한 사당들은 취푸에 있는 공묘를 본뜬 것이라고 합니다.



 

공묘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태백 제전이 열리고 있는 무석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기위해

곡부 역으로 향했습니다.

연휴기간이라 그런지 열차 안은 복잡하였고 우리 일행은 서로를 챙기며 정해진 좌석을 찾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곡부역 에서 무석 까지는 1000Km가 넘는 거리로서 시속 300Km의 고속 열차로 4시간가량

달립니다.

 


 

어두운 창밖으로 간간히 스치는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지나간 서너시간, 지루한 생각이

들 무렵 기차는 무석 역에 도착 하였습니다.

열차가 역에 정차하는 시간은 2, 30여명의 종친들이 커다란 여행가방을 들고 한꺼번에

내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필사의 탈출 끝에 역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거치며 긴 거리를 이동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와 만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여 무석 시내에 있는 입생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49,

중국 상숙(常熟,창슈)시는 토양고옥세무수한지재(土壤膏沃岁无水旱之灾, 토지가 비옥하고,

이제껏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재난이 없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천년의 고성(古城) 이라 합니다.

이 상숙시 외곽에 우리 오씨의 혈족인 중옹공의 사당과 묘가 있습니다.

 

지난해 까지 태백 탄신제 행사에는 중옹묘 참배가 있었는데 올해는

중옹묘 참배 일정이 아예 없는 관계로 우리 한국 참배단은 태백제전 하루 전날 중옹공의 묘에

참배하기위해 여기 상숙에 왔습니다.

오씨의 유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나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오태백(吳太伯)은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의 초대 군주이자, ()의 시조입니다.

주나라 태왕(太王)인 고공단보의 세 아들 중 장남이 태백입니다. 둘째는 중옹(仲雍),

셋째는 계력(季歷)이었습니다. 태왕은 셋째 계력의 아들 창()이 군왕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왕위를 계력에게 넘겨주기로 합니다. 이를 알게 된 태백은 아우 중옹과 함께 형만(荊蠻)

이란 곳으로 도망하고, 왕위는 계력을 거쳐 창에게 이어집니다.

태백(太伯)은 형만(荊蠻)으로 도망가서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구오(句吳)라고 칭했습니다.

형만(荊蠻) 사람들은 그를 앙모(仰慕)해 그를 따르는 자가 1천 호()가 되었으며,

그를 오태백(吳太伯)에 옹립했습니다.

태백(太伯)이 죽은 후 아들이 없어 동생 중옹(仲雍)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오중옹(吳仲雍)입니다.

따라서 중옹은 우리 오씨의 혈조인 것입니다.

중옹 사당에 참배를 하고 뒷산 계단을 오르면 중옹 묘가 있습나다.

우리일행과 중국 샤먼 오씨종친회장단을 만나 함께 중옹묘에 참배 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조상에 참배를 할 때 재배를 하는데 중국은 조상에게

4배를 한다고 하네요. 우리도 중옹묘에 4배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혈조인 중옹공의 묘소 모습은 조금 초라한 모습입니다.

시멘트로 둘러쌓인 묘소에는 상석이나 비석도 없어서 우리 한국인의

정서로는 조상에대한 미안한 마음입니다.

 

 

 

 

 

중국 샤먼종친회장 에게 우리 한국오씨종친들이 성금을 모아 중옹묘소

 앞에 상석이나 아니면 향로라도 설치하면 어떻겠느냐 하고 물으니

중옹묘는 중국 상숙시에서 문화재로 관리를 하고있는바 우리 오씨들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곳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상숙시와 협의를 해야 할 문제 인 것 같아 쉽지 않음을 직감하였습니다

 다시 무석으로 돌아오는 길에 중국 샤먼종친회장단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중국 샤먼은 올 11월에 세계오씨대회가 열리는 곳입니다.

 

 

 

 

 

오후 3시경 무석에 도착 할 무렵 비가 내립니다. 몇일 여행을 하는동안

잘 참아주어서 다행 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립니다.

내일 태백제 행사에도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우중에 우리 일행은 무석의 태백 사당을 방문 하였습니다.

태백 사당은 태백 시조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무석 시내에 위치 해 있고

내일 태백 제전 행사를 할 지덕사 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태백 시조로부터 오나라가 월나라에 의해 망하기 전인

25대 부차왕 까지 왕 들의 조형물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오늘 저녁은 주최측의 초청 만찬이 있는 날입니다.

무석의 입생호텔 만찬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참배객들이 모입니다.

우리도 테이블 2개를 배정받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진수성찬과 함께 고량주 잔이 오가고 무대에는 세계 각지에서 오신

종친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집니다.

만찬장에는 한국오씨 대동종친회라는 단체에서 몇분이 오셨는데

지덕사 비림에 비석을 세우고 개막식을 하려고 왔다 합니다.

 


 

410

오늘은 태백 제전에 참석을 한 뒤 상해로 이동을 해서 귀국 하는 날입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조식을 먹었슴니다. 외국여행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 우리 한국사람들

참 부지런 하다는 생각입니다.

식당이 문을 열기도 전에 모두들 나와 계십니다. 이렇게 부지런하니

전쟁 폐허 후 40여년의 짧은 기간에 세계 12위의 경제규모를 갖는

국가를 만들었으리라.

태백제전 행사장은 예년에 비해 많이 축소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국의 대형 종친회기에 의해 광장이 붉은색으로 뒤덮였습니다.

태백 시조의 동상 앞에는 수많은 화환이 헌화 되어있었고 종친회 별로

기념 사진을 찍느라 북새통입니다.

 

 

 

각국의 대표들이 단상에 나와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 일행은 제전에 참가하기 앞서 태백시조의 묘에 참배 하기로 하였습니다.

원래 태백제전에서 제사를 모시고 이어서 태백시조의 묘에 참배 하는 것이 순서인데

우리는 귀국일정에 맞추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태백시조의 묘에 참배하고 내려오니 제전 행사가 한창입니다.

 우리도 각국 종친들 인파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이렇게 중국까지 와서 조상에 예를 올리고 나면 마음 한켠에 뿌듯함이

자리 잡고 우리 후손들이 조상의 음덕으로 번영하리라는 마음의

안식을 갖게 됩니다.

 


 

조상님이시여 우리 국내의 모든 오씨 종친들이 통합을 이루어서 서로

갈등하지 않고 종친의 발전만을 논하며 미래 통일 한국의 흥성을 주도하는

성씨가 되게 하여 주소서.

 

 

 

4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확인하는

 여행 이었던 것 같아서 귀국하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3,303주기 태백탄신제에 참여 해 주신 모든 종친님들께 감사의 말씀

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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